김규항 강연회 주저리주저리


2009년 11월 16일 생활도서관 주최한 김규항씨 초청 강연회가 있었다. (블로그에 미리 광고라도 올려볼 걸 그랬나 하지만, 내 블로그는 '아직' 인기블로그가 아닌지라 ㅋ)

주최측에서 발제문으로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김규항씨의 칼럼을 선정했다. 다른 여러가지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강연은 기본적으로 이 글을 바탕으로 진행이 되었다. 따라서 강연에는 상당히 다양한 논점들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기억나는 것만 따져보자면, 반MB운동, 대한민국의 교육, 행복한 삶, Loser파문 정도가 있는 것 같다. 


20091116 @ Sungkyunkwan univ. Suwon, Korea.



"반MB를 말하는 사람과 이명박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으로 강연은 시작되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릴 "사장"을 원했던 국민들은 대통령직을 "민영화"시켰고, 그 결과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아주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그래서 그는 지금 열심히 4대강 삽질을 해서 국가 경제를 살리려고 노력중이다.

반MB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이명박과 다르다면, 그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것(상황, 대상 등)은 이명박이 즐거움을 느끼는 것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즐거움을 느끼는 것(다른말로 하면 가치관, 추구하는 삶정도가 될 듯)이 같으면서도 이명박을 반대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은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아이가 학원에 안갔다고 화내는 부모, 아주 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경쟁에 내몰면서 진보적인 서울대생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은 진정으로 이명박과 다르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의 인생에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전반기와 대학에 들어간 후의 후반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후반기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전반기의 인생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상당히 강력한 사회통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경쟁해서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지 않나?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통장에 수억의 인세를 넣어두고서도 풀이 무성한 초막에 살았던 권정생선생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즐거운 삶을 살 것을 주문했다. 경쟁에서 빠져나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즐거운 삶을 살 것. 

김규항씨가 행복론을 이야기하다니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결국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명제를 떠올리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80년대 많은 활동가들은 즐거움이 아니라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고통스러움을 극복해서 해방을 쟁취하는 것이 목표였기때문에 실패했다고도 이야기했다. 

또한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루저"논쟁에 대한 의견도 이야기했다. (강연이후 이 내용은 한겨례신문에 '루저'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기고되었다.) 한 여성이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 한 것이 그렇게도 문제가 되는가? 이 말 외에 "조건이 맞다면 사랑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도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쑥 들어가지 않았나? 오히려 사랑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이 더 무서운데, 자본의 귀신들린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이야기에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고 놀랐다.

이런 내용을 강연에서 들을 수 있었다. 강연내용을 메모해놓은 자료집이 안보여서 기억에 의존해서 상당히 거칠게 요약을 했다. 강연은 약 한시간이 넘게 진행이 되었고, 간략하게 질의 응답을 마치고 강연회는 마무리가 되었다. 강연에는 4~50여명의 학생들과 '고래주주!!!'이신 교수님도 한분 참석하셨다. 김규항씨의 추측과는 다르게 대부분은 공대생이 아닌 자연과학부 학생들이었다. 강연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데 수줍은 이과생들은 강연내내 김규항씨가 던진 질문에 어색하고도 다양한 웃음으로만 화답을 했다. 이과생들의 웃음포인트는 김규항씨의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아마 뛰어난 상상력덕분에 두 수 이상 앞서서 생각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좌우단간 강연의 내용은 상당히 좋았다. 김규항씨의 유머감각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도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많은 학생들이 즐겁게 집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생운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침체기이고, 특히 율전의 운동은 이미 맥이 끊겼다. 90년대 중반까지 2천명 이상의 학우가 모여서 집회를 하던 민주십자로에 기괴한 모양의 삼성학술관=도서관을 건설한 것은 학내에서 자본이데올로기가 완벽하게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학교가 발전해야 나 자신의 가치도 올라간다는 학교발전이데올로기와 운동권이 학교를 망친다는 두가지 이야기로 2001년 반운동권학생회가 처음 집권한지 9년째... 학교측의 학생자치에 대한 탄압은 날로 강해지고, 대학은  취업만을 위한 전초기지가 된지 오래다. 대학교 1학년 입학하자마자부터 스펙을 쌓기 위해서 신입생들은 골몰을 하고 있다. 이미 대학은 진보적 담론을 제시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지는 오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대학생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처럼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적지않은 숫자의 학생들은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들의 고민은 초보적일 수도, 아마추어적일 수도, 현실성이 없을 수도, 근거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상식적인 이야기도 쉽게 하지 못하는 현재 분위기 속에서 변화를 모색한다는 진보적인 혹은 진보적이려는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율전에서는 생활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활도서관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최근 김규항씨의 블로그와 박노자씨의 블로그를 보고 있다. 박노자씨는 한국인이 아님에도 한국인보다 더욱 뛰어난 한국어(및 한자어) 구사능력에 우선 놀라고, 귀화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하지만 역시 박노자씨의 글에서는 학자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는게 그래서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에 반해 김규항씨의 글은 대중적이고 쉽다. 그리고 강연에서 새삼 레닌식의 막대구부리기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는 가끔 오해를 낳기도 하는데, 이 오해 속에서 당일 한 질문자는 "촛불을 너무 폄하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에 김규항씨의 관심은 "내안의 이명박"이다. 개인의 성찰과 반성이 없는 한 진보의 미래는 없기때문이다. 아마 그는 소련의 붕괴,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목도한 386들의 빠른 속도의 '청산'을 목격했기 때문에 더더욱 개인의 성찰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386들의 투쟁은 헌신적이었지만, 그 투쟁은 즐거웠기보다는 희생적이었고, 개인의 성찰이 없었기 때문에 소련의 붕괴라는 사건을 속에서 대안을 마련하기 보다는 소부르주아지적 욕망에 그토록 빠르게 순응한 것이 아닐까하는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시스템이 인간성을 지배한다고, 자본주의시스템이 사람들에게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고, 인간의 소외를, 노동의 소외를 불러일으켜 인간성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지 시스템만이 바뀐다고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소련이 보여줬다. 그렇다고 개인의 성찰을 통해서만 세상이 바뀔 수도 없다. 이는 종교를 보면 알 수 있다. 개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지도 의심이 가지만, 종교에 의해서 사회가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 역시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시스템 변화와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개인의 성찰은 상호보완관계로 함께 가져가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조금씩 고민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생활도서관은 나에게 고민을 할 기회와 고민의 결과물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제시해줬다. 내가 할 일은 지금 이러한 고민들이 그저 헛된 망상으로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의 사진은 공허하고 지적으로만 보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밀착해서 사람들의 이야기, 마땅히 해야할 이야기를 같이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한몸의 경제적 안위가 아니라 행복하고 건전하게 살기 위해서 내 자신을 변화 시키는 것, 애플의 기술력과 나의 소부르주아지적 욕망에 만족을 주는 그들의 광고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 나의 노동에서 진정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바꿔나가야겠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시대에 나라는 대학생이 가야할 길이 아닐까? 다시 한 번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일년이 지난 후에 이 글을 부끄러워하면서 읽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연사 김규항씨와 강연을 준비한 생활도서관, 자연과학부 학생회 친구들 +a

덧글

  • Rootroot 2009/11/28 01:24 # 삭제 답글

    저희 대학 교수님 한 말씀입니다만

    "공학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다."

    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뭐 저한테는 공과와 자연과학이 비슷하다고 생각돼서 적습니다.)

    그런데 이런 강연회를 공대에서 주최하고

    또 거기에 참석하시는 분을 보니 신기하기까지 하네요....

    뭐 문과든 이과든 거기에 얽매여서 산다는 건 말도 안된다는 건 잘 알지만요...
  • 길잃은아이 2009/11/28 03:08 #

    공학자들보다 기초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더 세상의 일에 더 무관심하다고들 하죠. ㅋ

    2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에서 맨하탄 프로젝트라는 걸 했었죠.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데 최신 기술을 활용한 이 무기개발에 매우 다양한 과학자집단이 참여했었고, 그들은 기술개발을 통한 인류의 진보를 꿈꿨죠.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꿈은 미국이 실전에 2방의 핵폭탄을 사용하면서 산산히 깨졌죠. 뭐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 할 때 그 배경이 되었던 우생학이랄지 사회 진화학같은 사이비 과학들의예도 있구요.

    과학자들의 사회에 대한 무관심은 다른 어느 누구의 무관심 보다 더 큰 파장을 낳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반성이 전세계적으로 지난 반세기동안 이뤄져왔음에도 대한민국의 과학계는 너무 무관심한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Rootroot님의 대학교수님의 말은 이과생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듣고 공감하는 말입니다. 걱정되는 현실이지요.

    이과든 문과든 대학생의 활동들은 더더욱 활발해져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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